Notes

AI가 일을 대신하면 내 집은 누가 사게 될까

Aug 2, 2026 · 4 min · hyol
AI가 일을 대신하면 내 집은 누가 사게 될까

AI가 사람 일을 얼마나 대신하게 될지 생각하다가 엉뚱하게 집값까지 갔다. AI와 부동산은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집 살 돈은 결국 대부분 일해서 버는 거니까.

요즘 주변 지인들 회사 얘기를 듣다 보면 신입 채용 공고가 예전보다 확 줄었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한두 곳만의 분위기는 아닌 듯했고 이 흐름이 이어지면 지금의 20·30대, 더 나아가 10년 뒤 20대가 될 현재의 10대가 집을 사려고 할 때도 영향을 받는 건 아닐까 싶었다.

집값은 다음 사람이 지불할 가격이다

집을 가진 사람은 지금 가격으로 자산을 계산한다. 내가 산 값이 얼마고 같은 단지에서 최근 얼마에 거래됐고 호가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앱에 찍힌 숫자를 보면 내 집도 그 정도라고 여기게 된다.

그 숫자가 진짜 돈이 되려면 누군가 그만큼을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10억인 집에 10년 뒤 20억이라는 가격표가 붙더라도 그 시점에 20억을 낼 사람이 없으면 실제 거래가격이 되지는 않는다.

미래 매수자의 소득과 대출 여력이 집값 상승을 따라오지 못하면 호가는 남아도 거래는 줄어든다.

내 집값은 내가 아직 만나지도 않은 사람의 사정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 다음 사람이 사라진다면

근로소득으로 집을 마련하는 사람은 대체로 월급을 모아 종잣돈을 만들고 앞으로도 그 소득이 이어질 거라는 전제로 30년짜리 대출을 받는다.

여기에 AI가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집을 사는 사람의 근로소득은 회사에 들어가는 데서 시작되니 먼저 채용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생각해봤다.

회사 입장에서 신입을 채용해 업무를 가르치는 데는 시간이 든다. 2년쯤 가르쳐놓으면 이제 업무에 익숙해질 만한 시점에 더 나은 연봉을 찾아 이직을 알아보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가르친 값을 회수하기 전에 사람이 나간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럴 바에는 이미 익숙한 과장급을 한 명 뽑아서 AI를 붙인다. 신입 두 명분을 그 자리에서 처리한다. AI 활용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이 계산이 점점 쉬워졌다.

그러면 처음 들어가는 문이 좁아진다.

물론 반대쪽 이야기도 있다. 산업혁명 때도 기계가 일자리를 없앤다고 했지만 결국 없던 직업이 더 생겼다. AI도 그럴 수 있다. 다만 그때는 새 일자리가 자리를 잡는 데 한 세대가 걸렸다. 지금 스물다섯인 사람이 그 세대를 통과하는 동안에도 집은 계속 팔리고 팔려야 한다.

그럼 몇 년 늦게 시작하는 걸로 끝날까. 그게 궁금해서 찾아보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에 낸 보고서를 봤다. 제목이 「청년세대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의 생애영향 평가」다.

미취업 기간이 1년이면 5년 뒤 상용직으로 일할 확률이 66.1%인데 3년으로 늘면 56.2%로 떨어진다. 미취업 기간이 1년 늘 때 실질임금은 평균 6.7% 줄어든다는 추정도 있었다. 원문은 여기.

BOK ISSUE NOTE · 2026-2

5년 뒤 상용직 근무 확률

미취업 1년66.1%
미취업 3년56.2%
두 집단의 격차-9.9%p
미취업 기간이 1년 늘 때현재 실질임금 평균 6.7% 감소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제2026-2호의 분석 결과를 시각화했다.

늦게 들어가면 늦게 시작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임금이 깎인 채로 출발한다.

첫 월급이 늦고 오르는 속도도 느리다. 종잣돈 모으는 시기가 밀리고 대출을 감당할 시점도 밀린다.

그 사람들이 10년 뒤 내 집을 사러 올 사람들이다.

가격표는 남고 거래가 사라진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는 답이 쉬워 보였다. 살 사람이 줄면 값도 내린다.

그런데 집을 첫 월급만으로 사지는 않는다. 이미 가진 집을 팔아 더 비싼 집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고 사업소득이나 금융자산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AI가 만든 이익이 누구 주머니로 가는지도 걸린다. 노동으로 집을 사던 사람은 줄어드는데 AI 기업 주식이나 이미 가진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사람의 구매력은 오히려 세진다.

그래서 전국 집값이 사이좋게 내려가는 그림은 안 나올 것 같다. 대신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2036년에 서른네 살이 된 한 청년을 상상해본다. 소득은 나쁘지 않다. 다만 그 일이 3년 뒤에도 있을지 확신이 안 서서 30년짜리 대출 서류 앞에서 멈춘다. 미래를 담보로 걸 자신이 없는 거다. 그는 계속 월세에 산다.

같은 해, 마흔셋의 다른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AI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업계 안에 있었다. 지금은 AI를 붙여 예전 두세 명 몫을 처리하고 회사는 신입을 안 뽑는 대신 연봉을 올려줬다. 그는 핵심지에 집을 산다.

둘의 차이는 능력이 아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갔느냐다.

앱에는 여전히 집마다 가격이 찍혀 있지만 그 숫자가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어떤 집은 거래가 이어지고 어떤 집은 매물로 오래 남는다.

호가는 그대로인데 거래만 마르는 집이 늘어날 수 있다. 앱에 표시된 숫자와 실제로 팔리는 가격 사이가 벌어지면서 같은 서울 안에서도 이런 차이가 선명해진다.

THOUGHT EXPERIMENT
  1. 01AI가 업무를 대신한다
  2. 02신입 채용이 줄어든다
  3. 03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진다
  4. 04소득과 종잣돈 형성이 밀린다
  5. 0510년 뒤 매수층이 얇아진다
값이 먼저 내리는 게 아니라, 거래가 먼저 마른다
여기까지 이어붙인 가정을 한 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값보다 사람의 범위가 먼저 줄어든다

이번 상상은 AI가 채용과 근로소득의 경로를 바꾸면 10년 뒤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의 수와 대출 여력도 달라지고 그 변화가 거래와 집값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닿았다.

그래서 요즘 AI가 어떤 일을 대신할지를 생각하면 일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변화가 어느 집의 거래를 마르게 하고 어느 집의 가격은 계속 받쳐줄지도 함께 궁금해진다.

hyol avatar
hyol — brew

기술과 도구, 그리고 말차 한 잔의 기록.

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