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차는 원래 이런 색과 맛이어야 하는 걸까. 첫 한 캔에서 시작된 오해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2023년 도쿄 여행에서 처음으로 비싼 돈을 주고 말차 한 캔을 샀다. 센소지 근처 이토엔(伊藤園) 팝업 스토어 같은곳이었는데, 당시에 오이오차 같은 가벼운 녹차 제품을 마시다가 격불해서 마시는 말차까지 관심이 넓어진 참이었다. 내가 가장 잘 알던 일본 차 브랜드가 이토엔이었으니 이 제품도 믿고 골라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막상 캔을 열었을 때 말차는 선명한 초록색이 아니라 군대색에 가까운 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산화가 진행된 제품으로 보이지만 그때는 말차의 상태를 가려낼 경험이 없었기에 마셔보고도 제품보다 내 입맛을 먼저 의심했다.
말차는 원래 이런 맛인가…?
처음 구매했던 고급 말차의 실망감
이후에도 오이오차를 비롯한 이토엔의 가벼운 녹차 제품은 계속 마셨지만 직접 격불해 마시는 진중한 말차 라인업에는 다시 손이 가지 않았다. 비싼 돈을 주고도 만족하지 못했던 기억이 제품을 고르는 순간마다 먼저 떠올랐다. 첫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어떤 경로로 그 말차의 상태가 달라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시의 나는 보관과 유통 과정까지 포함해 살필 기준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 캔의 상태와 브랜드 전체를 거의 같은 것으로 취급한 셈이고 그래서 한 번의 좋지 않은 경험을 말차라는 종류 자체에 대한 판단으로 넓혀버렸다.
그 판단이 처음 흔들린 건 칸바야시 슌쇼 본점(上林春松本店)의 계절 한정판 와카모리의 시로(若森の白)를 마시면서였다. 일본에 사는 막내동생에게 구매를 부탁해 받은 제품으로, 캔을 열었을 때부터 가루의 색이 이전 기억과 달랐고 격불한 뒤에는 다완 안에 선명한 초록색이 퍼졌다.

구운 밤이나 견과류를 떠올리게 하는 고소함과 부드러운 질감도 좋았고 무엇보다 캔을 다 비울 때까지 맛있었다. 다 마신 뒤에야 예전에 마신 탁한 말차가 말차의 기준일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받아들였다.
말차의 맛은 가격표나 브랜드 이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 손에 들어왔을 때의 상태와 개봉한 뒤 얼마나 잘 보관했는지까지 합쳐져 내가 마시는 한 잔의 맛이 된다.
지금은 보관부터 다르게 한다
요즘은 곧 마실 미개봉 말차는 냉장실에 두고 몇 달 이상 장기 보관할 제품만 냉동실에 넣어둔다. 한 번 연 제품은 밀봉해 냉장실에 보관한다. 예전에는 좋은 차일수록 아껴 마시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말차는 열어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의 향과 색을 그대로 기다려주지 않으니 지금은 개봉한 제품부터 마시는 순서를 정한다.

교토부차업회의소(京都府茶業会議所)는 차 보관 안내에서 미개봉 제품을 냉장이나 냉동 상태로 보관하고 몇 달씩 두어야 할 때는 냉동실을 이용하라고 권한다. 사용할 때는 상온으로 되돌린 뒤 개봉하라는 설명도 함께 붙어 있다.
소산원(丸久小山園)의 말차 보관 안내에도 말차는 고온과 습기, 빛과 다른 음식의 냄새에 영향을 받는다고 적혀 있다. 가정에서는 냉장을 권하고 냉동은 장기간 보관할 때 이용하되, 냉장이나 냉동 상태에서 꺼낸 캔은 상온에 가까워진 뒤 열어야 결로로 인한 습기를 피할 수 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처음 구매했던 이토엔 말차는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산패 되었던것이 확실한 것 같다.
지금 내 보관 기준은 단순하다.
- 보관을 오랫동안 해야할 경우 : 냉동실
- 바로 마셔야 할 경우 : 개봉 후 냉장 보관
- 평상시 : 여름을 제외하고는 상온 보관 가능하나, 가급적 냉장실 보관
가장 좋은것은 쟁여두지 말고 구매 후 빠른 시일 내에 소비할것 이다. 아끼다 똥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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